들어가며 — 은행 창구를 나오며 느꼈던 서늘한 불안감
앞선 17편에서는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 자산을 복리로 불려 나가는 피라미드 시스템과 조금 공격적인 MSTY 대출 실험을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공격적인 투자 이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내 목돈을 온전히 지키는 법’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시간을 2019년으로 돌려, 서울 집을 팔고 쥔 목돈을 은행에 넣으려다 5천만 원 예금자보호의 한계와 ‘베일인’이라는 서늘한 진실을 마주했던 순간, 그리고 전 재산의 5%를 실물 골드바로 바꿔 가정용 금고에 넣게 된 진짜 이유를 전해드립니다.
1. 은행에는 ‘베일인’이라는 또 다른 위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은행이 부실해졌을 때 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베일아웃(bail-out)과 베일인(bail-in)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베일아웃은 정부가 세금(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 은행을 살리는 방식이고, 베일인은 반대로 그 은행의 주주와 채권자(예금자 포함)가 손실을 먼저 떠안게 하는 방식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세금으로 대형 은행들을 구제한 데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국제 금융안정위원회(FSB)를 중심으로 베일인 제도가 각국에 권고됐고,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법제화되어 있습니다.
다만 정확히 말씀드리면, 한국은 이 베일인 제도를 예금자에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과 고객의 반발을 고려해, 정상화·정리계획(RRP) 논의 과정에서 베일인 제도는 제외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 법이 예금자의 돈으로 은행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해뒀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 논의 자체가 있었다는 사실, 즉 “은행이 망하면 예금자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는 방식이 국제적으로 진지하게 논의되고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로 법제화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예금이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완전히 안전한 자산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2. 바젤 III와 금 — “이게 무슨 뜻이지?”
비슷한 시기에 뉴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바젤 III 규정에 따라 은행이 보유한 금(실물 골드)이 ‘위험자산’에서 ‘무위험자산(티어1)’으로 재분류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확인해보니, 이 규정은 국제결제은행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가 정한 것으로, 유럽은 2021년 6월 말부터, 영국은 2022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됐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접한 2019년 무렵에는 이 규정이 확정되어 각국에서 시행을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이런 뜻이었습니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감독하는 국제 기구가, 금을 미국 국채와 같은 급의 안전자산으로 인정하겠다는 것. 저는 여기서 반대로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럼 지금까지는 금의 위치가 미국 국채보다 아래였다는 건가?”
3. 금이라는 자산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다
이 질문을 계기로 저는 금이라는 자산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화폐로 취급받아온 자산이고, 지금도 거의 모든 국가가 준비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영국이 기축통화국 지위를 미국에 넘겨주던 시기에 세계의 금 보유량 역시 상당 부분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해석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저도 역사학자가 아니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금이 국가 간 힘의 이동과 무관하지 않은 자산”이라는 인상은 그때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이거였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개인은 금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지? 왜 장식품으로만 생각하지?” 국가는 준비자산으로 금을 쌓아두는데, 개인은 돌잔치 반지나 결혼 예물 정도로만 여긴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가 가지고 있다면, 개인도 자산의 일부는 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전체 자산의 5% 정도를 금으로 가져가기로 결정했습니다.
4. 어떤 형태로 살까 — 장식품이 아니라 골드바와 코인으로 (금·은 10:1 비율)
결정은 했는데, 어떤 형태로 사야 할지가 또 문제였습니다. 처음엔 저도 금 장식품을 살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골드바와 골드 코인이라는 형태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게 장식품보다 훨씬 순수하게 자산으로서의 금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금거래소에서 조금씩 사기 시작했습니다.
사다 보니 한국조폐공사에서도 골드바를 판매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이하게도 제가 다니던 금거래소에는 조폐공사 골드바가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조폐공사는 국가가 화폐를 만드는 곳이니, 신뢰도 면에서는 이쪽이 더 높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 어디서 사든, 나중에 필요할 때 되팔려면 “이게 진짜 금이 맞다”는 걸 누군가 검증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폐공사 골드바는 뒷면에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판별 인식 표시가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부분이 나중에 되팔 때도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금 코인 쪽에서는 미국의 이글(Eagle), 캐나다의 메이플(Maple) 같은 각국 조폐국이 발행하는 코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코인도 조금 사들였습니다.
이때 금과 은의 비율은 10:1로 가져갔습니다. 은은 시중에 너무 흔하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되팔려고 해도 금보다 유동성이 떨어지고 제값을 받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는 몇 달에 걸쳐 조금씩 금을 사 모았습니다. 그때 금 가격은 대략 온스당 1,300달러 정도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꽤 괜찮은 가격에 산 셈이 됐습니다.
당시에는 금값이 오르는지 내리는지, 환율이 오르는지 내리는지를 매번 신경 썼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그런 단기적인 변동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15편에서 말씀드린 “충분히 긴 시간을 두고 보유한다”는 원칙을, 저는 사실 비트코인보다 먼저 금에서 배운 셈입니다.
5. 금고를 처음 사보다 & 그리고 지금, 같은 이유로 비트코인을 삽니다
금을 보관하기 위해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금고라는 걸 사봤습니다. 그 안에 제 금을 넣어두고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이자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데도 좋았습니다. “이 감정이 뭐지?” 싶었습니다. 은행에 돈을 넣어둘 때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말이죠.
시간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은행 예금은 제3자(은행) 위험을 안고 가는 자산이지만, 금고 속의 금은 그런 위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변 가족들은 금을 산다는 저를 조금 이상하게 봤습니다. “왜 갑자기 금을 사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런 의문도 가져봤습니다. “혹시 우리가 금을 소유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세상이 은연중에 그렇게 만들어온 건 아닐까?” 이건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그저 제가 그 시점에 품었던 개인적인 의문이었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이 모든 경험을 거치고 나서, 저는 지금 비트코인을 사고 있습니다. 14편에서 말씀드린 콜드월렛 이야기도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제3자 위험이 없다는 점, 이게 제가 금과 비트코인에서 동일하게 느낀 매력입니다.
은행은 예금자보호한도라는 벽이 있고, 문제가 생기면 제3자(은행)의 사정에 제 자산이 좌우됩니다.
반면 금고 속의 금과, 제 콜드월렛 속의 비트코인은 온전히 제 것입니다. 2019년의 금이 없었다면, 지금의 비트코인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 이자가 0원이어도 금고 속 금이 편안했던 이유
정리하자면, 저는 2019년 서울 집을 정리한 뒤 예금자보호 한도의 한계를 체감하며 금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바젤 III 규정에서 금이 무위험자산(티어1)으로 재분류되는 국제 금융 흐름을 확인했고, 전체 자산의 5%를 조폐공사 골드바와 조폐국 불리온 코인(금·은 10:1 비율)으로 매입해 태어나 처음 산 금고에 보관했습니다.
온스당 1,300달러에 샀던 금이 시간의 힘을 타고 우상향하는 것을 보며, 그리고 금고를 닫을 때마다 밀려오던 안도감을 통해 배웠습니다. 은행 예금은 ‘남에게 맡긴 장부’이지만, 내 손으로 쥔 실물 금은 ‘제3자의 파산 위험이 없는 진짜 내 것’이라는 사실을요. 2019년 금고 속에서 느꼈던 그 절대적인 평안함이, 지금 제가 비트코인을 개인 콜드월렛에 직접 보관하는 철학적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19편에서는 퇴직 후 노후 자금을 현명하게 지키고 인출하는 법, ‘은행 예금 vs IRP 2개 계좌 인출 전략’을 다뤄보겠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인 실물 자산 매입 및 보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정보 제공용 칼럼이며, 특정 금 거래소나 제품에 대한 추천 및 귀금속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귀금속 매입 시에는 부가가치세(10%)와 세공비, 매매 스프레드 등을 신중히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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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이해를 담은 기록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언급된 역사적 해석 중 일부는 여러 견해가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밝혀두며, 투자 판단은 반드시 본인의 상황에 맞게 신중히 내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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